뉴칼레도니아(New Caledonia) & 프랑스(French) 누메아 협정(Nouméa Accord)
뉴칼레도니아(New Caledonia) & 프랑스(French) |
1998년 누메아 협정(Nouméa Accord)은 프랑스 공화국(French Republic)이 뉴칼레도니아(New Caledonia)와 원주민인 카낙족(Kanak people)에게 20년의 과도기에 걸쳐 정치적 권력을 강화하겠다는 약속입니다.
1956년 뉴칼레도니아는 프랑스의 해외 영토 중 하나로 통합되었고, 이곳의 주민들은 프랑스 시민이 되었습니다. 1976년 프랑스는 뉴칼레도니아의 내정 문제에 자치를 허용하고 프랑스 정부를 대표하는 고위 행정관을 파리에서 임명하여 파견했습니다.
1985년에는 카나키(Kanaky) 민족해방전선(Front de Libération Nationale Kanak Socialiste, 이하 FLNKS)의 독립투쟁이 시작되었고, 장 마리 티바우(Jean-Marie Tjibaou, 1989년 암살됨)가 이끌고 있던 카나키 민족해방전선은 "Kanaky"의 독립을 주장하였습니다.
FLNKS가 일으킨 분쟁은 1988년 우베아에서 일어난 유혈 인질극 사건으로 절정에 달하게 되면서, 이로 인한 뉴칼레도니아 사회의 불안감은 1988년 마티농 협약과 1998년 누메아 협약에서 자치권 향상을 합의하기에 이릅니다.
1998년 5월 5일 당시 프랑스 총리 리오넬 요스핀(Lionel Jospin)이 이 협약에 서명했고, 11월 8일 뉴칼레도니아에서 열린 국민투표에서 72%의 찬성으로 누메아 협정(Nouméa Accord)이 승인되었습니다.
이 협정에 따라 20년이 지나 프랑스의 특별 집단으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독립 국가가 될 것인지에 대해 세 차례의 국민투표가 실시되었습니다. 첫 번째 2018년(57%가 독립을 반대), 두 번째 2020년, 세 번째 2021년에 열렸습니다. 세 번의 투표에서 과반수가 프랑스의 특별 집단으로 남아 있기로 결정되었습니다.
다만 2021년 12월에 열린 세 번째 투표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투표를 연기해야 한다는 친독립 세력들이 보이콧에 나섰고, 프랑스 정부가 이를 거부하였습니다. 이 가운데 카낙족은 투표를 전면 거부하였고, 카낙족을 제외한 유권자의 96%가 프랑스 특별 집단 잔류를 선택하였습니다.
누메아 협정에 따라 프랑스는 군사 및 외교 정책, 이민, 경찰 및 통화를 지속적으로 통제해 왔습니다.
뉴칼레도니아의 수도이자 가장 큰 도시의 이름을 딴 누메아 협정은 마티뇽 협정(1988년)에 이은 두 번째 협정입니다.
* 마티뇽 협정(Matignon Agreements, 1988)은 10년의 개발 기간을 설정하였고, 카낙 공동체를 위한 제도적, 경제적인 조항들이 만들어졌습니다. 뉴칼레도니아인들은 이 기간 동안 독립 문제를 제기하지 않기로 합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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